🌍 지진이 동물의 진화를 바꾼다? 자연재해가 만든 진화의 갈림길
우리가 자연재해라고 하면 떠올리는 것은 파괴적인 이미지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최근, 일본에서 일주일간 1,000여건의 지진이 기록되며 난카이 대지진에 대한 두려움이 전세계인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진, 화산 폭발, 쓰나미 같은 사건은 인간의 삶에 큰 피해를 줍니다
하지만 수백만 년이라는 시간의 눈으로 본다면 오히려 생명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전환점이 되기도 하는데요.
실제로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동물의 진화 경로를 바꾸어 놓은 사례들이 과학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대표적인 3가지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 갈라파고스의 지진이 이구아나를 바꾸다
해양 이구아나(Marine iguana, Amblyrhynchus cristatus)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바다에서 먹이를 찾는 이구아나입니다.
이들은 갈라파고스 제도에만 서식하며, 그 중에서도 화산활동과 지진이 잦은 섬에서 독특한 적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갈라파고스 지역에서 발생한 강력한 지진과 엘니뇨 현상은 해양 생태계에 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바다 온도 상승과 먹이 부족은 해양 이구아나에게 극심한 생존 압력을 가하였고, 그 결과 체형과 먹이 습성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먹이가 부족한 해에서는 작고 날씬한 개체들이 생존에 유리했으며, 실제로 개체 수가 줄어든 후 살아남은 이구아나들의 몸집이 평균적으로 작아졌습니다. 이처럼 자연재해가 생존을 압박하면서 진화적 변화를 빠르게 이끄는 사례는 진화 생물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연구 자료로 간주됩니다.
📚 출처: Wikelski, M. & Trillmich, F. (1997). Body size and animal survival in a variable environment: A study on marine iguanas. Nature, 387(6629), 787–790.
🐦 뉴질랜드의 ‘지진새’ – 키위와 멸종의 위기
키위(kiwi)는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날지 못하는 새로, 오랜 고립과 함께 특이한 진화적 경로를 밟아온 동물입니다. 뉴질랜드는 지진대인 ‘불의 고리’에 위치해 있어 지각변동이 잦고, 이로 인해 지형의 변화와 섬의 분리가 반복되어 왔습니다.
지질학적 분석에 따르면, 약 500만 년 전 뉴질랜드 남북 섬이 지진으로 갈라지면서 키위의 조상도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으며, 각각 독립적으로 진화해 오늘날 다양한 키위 종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북섬의 브라운 키위와 남섬의 오카라이트 키위는 그 외형과 유전자가 확연히 다릅니다.
이는 단순히 지리적 분리뿐 아니라, 지진이 만든 물리적 장벽이 종분화(speciation)의 계기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키위새에 대한 보다 심도깊은 이해는 제가 이전에 업로드한 포스팅을 참고해주세요.
📚 출처: Mitchell, K. J. et al. (2014). Ancient DNA reveals elephant birds and kiwi are sister taxa and clarifies ratite bird evolution. Science, 344(6186), 898–900.
🐚 해저 지진이 만든 고립 – 심해 조개 ‘벵골 스캐럽’
벵골 해구는 인도양 북동부에 위치한 해구로 인도, 방글라데시, 미얀마와 접해있는 해구입니다. 벵골 해구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지진 활동 지역 중 하나인데요, 이곳 심해에서는 지진으로 인해 해저 단층이 형성되며, 해양 생물의 서식지가 단절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해왔습니다.
2004년 인도양 지진 이후, 해양 지질학자들은 벵골 해구 인근에서 새로운 종의 조개를 발견했습니다. 이 조개는 기존에 알려진 조개들과 외형과 DNA가 확연히 달랐으며, 지진으로 분리된 심해 열수구 지역에서 고립된 채 독자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심해에서는 물리적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고립은 수십만 년 동안 유전적 격리를 유도하며 새로운 종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 ‘벵골 스캐럽’은 일반적인 조개류의 통칭으로, 특정 종의 공식 명칭은 아닙니다. 본문에서는 벵골 해구 인근에서 지진으로 고립된 채 진화한 심해 조개류 사례를 지칭하기 위해 편의상 사용하였습니다.
📚 출처: Vrijenhoek, R. C. (2010). Genetic diversity and connectivity of deep-sea hydrothermal vent metapopulations. Molecular Ecology, 19(20), 4391–4411.
🌱 마무리 : 진화는 때로 재난 속에서 태어난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는 단기적으로는 재앙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자연 선택과 종분화의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갈라파고스의 이구아나, 뉴질랜드의 키위, 심해의 조개들처럼, 동물들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새로운 종으로 갈라져 왔습니다.
이는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지구의 생물 다양성이 수많은 파괴와 재건의 결과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부디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리고 지구 어디서든 자연재해에서 안전한 곳은 없다는 사실 안에 그래도 생명의 역사는 계속된다라는 희망을 담아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 참고 자료
- Wikelski, M. & Trillmich, F. (1997). Body size and animal survival in a variable environment: A study on marine iguanas. Nature, 387(6629), 787–790.
- Mitchell, K. J. et al. (2014). Ancient DNA reveals elephant birds and kiwi are sister taxa and clarifies ratite bird evolution. Science, 344(6186), 898–900.
- Vrijenhoek, R. C. (2010). Genetic diversity and connectivity of deep-sea hydrothermal vent metapopulations. Molecular Ecology, 19(20), 4391–4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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